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크 커피 (문단 편집) == 튀르키예 커피의 변천사 == [[오스만 제국]]에 커피는 예멘을 통하여 유입되었다. 이미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는 [[메카]]에 수십개의 커피하우스가 들어설 정도로 커피가 보편적이었고, 메카순례를 다녀온 오스만인 무슬림들을 통해서도 커피는 어느정도 알려져 있었으나 오스만 제국이 예멘을 정복하고 커피재배지를 통치하기 시작한 이후로 커피는 오스만 제국 권역내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1543년]] 예멘 태수 외즈데미르 파샤(Özdemir Paşa)가 임기를 마치고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좋아하던 커피원두를 가지고 가면서 커피는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인 [[1554년]]에 이스탄불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개업하면서 일반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튀르키예 커피는 카흐베 카자느(Kahve kazanı, 커피솥)라고 불리는 내부에 주석을 코팅한 구리재질의 거대한 솥으로 끓였다. 당시에는 아직 핸드밀같은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주철이나 구리로 만든 프라이팬에 생두를 볶고, 소우단(Soğudan, 식힘통)이라고 불리는 나무통에서 볶아진 원두를 식힌 다음 커피 절구(Kahve dibeği)에 넣고 빻은 다음, 밀가루용 채에 쳐서 고운 가루만 모아서 사용했다. 1552년 메흐메트 황자의 할례식과 잔치를 묘사한 책인 Sûrnâme-i İntizâm에서 커피하우스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 커피를 끓인 솥에서 커피집 주인이 국자로 커피를 떠서 중국산 청화백자에 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가 16세기 후반에 이르면 귀윔(Güğüm)과 이브릭(İbrik)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브릭은 목이 길쭉한 형태의 주전자로 본래 세수대야와 한 세트로 구성되어 이슬람 예배전에 세정의식(Abdest)을 하거나, 손님이 오면 식사하기 전 손을 씻게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던 도구였으나 아랍권의 달라흐(Dallah)의 영향으로 오스만 제국에서도 커피를 끓이는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솥으로 끓이는 커피는 맛도 떨어지고, 국자로 퍼담을때 커피가 지저분하게 묻는 단점이 있어서 이런식으로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후반의 기록들을 보면 금속공들이 구리, 황동, 은으로 커피용 귀윔과 이브릭을 만들어 팔았다고 전한다.[* 귀윔은 이브릭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밑바닥이 평평해서 직화로 올려놓고 쓰기에 더 적합하며 오늘날에도 난로 위에 올려놓고 물을 끓이거나 하는 목적으로 종종 쓰인다.] 이 귀윔과 이브릭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솥은 커피하우스에서 뜨거운 물을 끓이거나 신선한 물을 보관하는 목적으로 바뀌었다. 이는 1656년 이스탄불을 여행한 프랑스 작가 장 테베노(Jean Thévenot)의 여행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당대의 풍속화나 유럽인들이 그린 풍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브릭으로 커피를 끓이던 시절에는 거대한 이브릭에다가 한꺼번에 커피를 끓인 다음, 손님에게 내올때는 보다 작고 예쁜 서빙용 주전자에다가 옮겨담아 내왔다. 당시의 서빙용 이브릭 유물들을 보면 당대 오스만 제국의 예술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서빙용 이브릭을 사용하는 풍습은 당시 커피가 서유럽권으로 전해지면서 함께 넘어갔고, 오스만 제국 양식의 영향을 받은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꽃무늬가 가득한 화려한 커피포트가 만들어졌다. 이 유행은 유럽에서는 20세기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1720년 [[튤립 시대]]의 파디샤 [[아흐메트 3세]]의 아들들의 할례식을 묘사한 Sûrnâme-i Vehbi에서도 당시 사람들이 이브릭에다가 커피를 끓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커피를 대량으로 로스팅하고 시중에 판매하는 상인들이 등장하고[* 오스만어로 커피 볶는 집이란 뜻으로 타흐미스하네(Tahmishane)라고 불렸는데 오늘날에도 고풍스러운 커피집 상호로 종종 보인다.],핸드밀이 발명되어 일반 소비자들이 소량의 원두를 필요할때마다 구입해서 직접 원두를 갈고, 커피를 끓일 수 있게 되자 더 작은 커피주전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 발명된 물건이 제즈베(Cezve)이다. 제즈베는 아랍어로 '한 모금의 물'을 의미하는 자즈와(جَوْزَةُ, jazwa)에서 비롯된 단어로 튀르키예 커피 1잔(80ml정도)에서 최대 6잔(400ml)정도를 준비할 수 있는 작은 냄비를 의미한다. 이전의 이브릭들은 최소 1리터 이상의 용량을 자랑했던 만큼, 확실히 크기가 작아졌다. 1763-1764년 사이에 이스탄불과 이즈미르의 스웨덴 대사관에서 통역사로 근무한 이냐시우스 도손(Ignatius d'Ohsson)의 책에는 당시에 튀르키예 커피를 제즈베에서 끓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제즈베가 보편화되자 기존의 커피 이브릭은 끓는 물을 담는 보조용도로 전락했고(이전의 커피 솥처럼)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커피 위에 뜨는 거품인 [[크레마]]를 중요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크레마같은거 신경쓰지 않고 그냥 팔팔 끓여 마셨다. 초창기의 제즈베에는 뚜껑이 달려있었다. 당시에는 장작불에 바로 이브릭이나 제즈베를 올려놓고 끓였기 때문에 나뭇재가 날려 커피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뚜껑이 있어야 했다. 또한 잡을때 손을 데는것을 막기 위해 지금의 제즈베보다 훨씬 더 긴 접이식 손잡이가 달려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 숯불을 태운 재를 사용하거나 알콜램프로 끓이는 방법이 보편화되면서 제즈베의 뚜껑은 사라지고, 손잡이는 보다 짧아져서 오늘날에 이른다. 한편 [[커피]]를 마시는 잔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청화백자]]를 최고로 쳤으며 서민들은 [[경덕진]]청화백자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치니(Çini)잔을 사용했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커피잔을 맨손으로 잡는것은 품위없다는 풍조가 돌면서 봉투(Zarf)라고 불리는 은, 황동, 구리재질의 화려한 장식을 한 커버를 쓰는 것이 상류계급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이르면 서구화의 영향으로 세브르 자기를 비롯한 서유럽산 자기가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유행했고, 손잡이 달린 유럽식 커피잔이 쓰이기 시작해서 오늘날에 이른다. 한편 옛 오스만 제국의 커피 문화가 남아있는 보스니아나 아랍권에서는 여전히 손잡이 없는 커피잔을 쓰는데, [[보스니아인]]들은 손잡이 없는 커피잔을 쓰는 이유로, 잔을 잡을때 엄지와 검지가 자연스레 [[초승달]] 모양을 만들게 되고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은 무슬림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문화적 상징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상징은 정작 튀르키예인들에게는 없는 것이라 흥미로운 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